신 애치슨 라인 (2025-09-27)
1. 서론: 애치슨 라인의 재림과 21세기 동아시아 안보 지형
1950년 1월 12일, 딘 애치슨 당시 미국 국무장관이 워싱턴 내셔널 프레스 클럽에서 행한 ’아시아의 위기’라는 제하의 연설은 20세기 냉전사의 흐름을 바꾼 중대한 지정학적 변곡점 중 하나로 기록된다.1 이 연설에서 그는 미국의 태평양 극동 방위선을 알류샨 열도-일본-오키나와-필리핀을 잇는 선으로 규정하였고, 이 선언은 ’애치슨 라인’이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각인되었다.1 이 선언이 한반도를 방위선에서 명시적으로 제외함으로써 불과 5개월 뒤 발발한 6.25 전쟁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비판은 오늘날까지도 한반도에 깊은 상흔과 역사적 논쟁을 남기고 있다.1 애치슨 라인은 단순한 과거사가 아니라, 외부 강대국의 전략적 선택이 한반도의 운명에 얼마나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현재진행형의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70여 년이 지난 지금, ’신 애치슨 라인(New Acheson Line)’이라는 유령이 동아시아를 배회하고 있다. 이 용어의 재등장은 과거의 단순한 반복이 아니다. 이는 21세기 국제질서의 근간을 흔드는 미중 패권 경쟁이라는 거대한 구조적 변화와,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로 대표되는 미국의 대전략적 고뇌가 낳은 새로운 지정학적 현상이다.4 과거 냉전 시대의 위협이 소련의 군사적 팽창이라는 비교적 단선적인 형태였다면, 오늘날의 도전은 군사 안보를 넘어 반도체 공급망, 인공지능(AI), 디지털 패권 등 경제와 기술 영역까지 아우르는 다차원적 양상을 띤다. 따라서 ’신 애치슨 라인’은 과거와 같이 단순히 ’미국이 어디까지를 군사적으로 방어할 것인가’의 문제를 넘어, ’누가 미국의 기술·경제 생태계에 포함될 것인가’라는 더 복잡하고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6 이는 한국에게 안보적 선택과 경제적 생존이 더 이상 분리될 수 없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의미하는 중대한 함의를 지닌다.
본 보고서의 목적은 이러한 시대적 전환점에서 ’신 애치슨 라인’의 실체를 다각도로 해부하고, 한국이 직면한 위기와 기회를 분석하여 국가적 생존 전략을 모색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 먼저 1950년 애치슨 라인의 역사적 본질과 6.25 전쟁과의 인과관계를 비판적으로 재검토할 것이다. 과거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는 현재의 위협을 올바로 진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어 ’신 애치슨 라인’이 부상하게 된 배경을 미중 패권 경쟁과 미국의 전략 변화 속에서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이것이 한국의 안보, 경제, 외교에 미칠 다층적 영향을 구체적으로 전망한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엄중한 지정학적 현실 속에서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전략적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2. 1950년 애치슨 라인의 본질과 역사적 맥락
애치슨 라인을 단순히 6.25 전쟁의 ’원인’으로 규정하는 것은 역사적 맥락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이 선언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급변하던 국제 정세 속에서 미국의 제한된 국력과 전략적 우선순위가 반영된 복합적인 산물이었다. 따라서 그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냉전 질서와 미국의 아시아 정책, 그리고 연설 자체의 내용과 의도를 면밀히 분석해야 한다.
2.1 전후 냉전 질서와 미국의 아시아 정책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세계는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진영과 소련 중심의 공산주의 진영으로 양분되는 냉전 체제로 빠르게 재편되었다.8 당시 해리 트루먼 행정부의 대외정책 최우선 순위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서유럽의 재건을 돕는 ’마셜 플랜(Marshall Plan)’과 소련의 팽창을 저지하기 위한 ’트루먼 독트린(Truman Doctrine)’에 집중되어 있었다. 상대적으로 아시아에 대한 전략적 관심과 자원 투입은 후순위로 밀려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49년은 미국의 아시아 정책에 결정적인 전환점이 된 해였다. 마오쩌둥이 이끄는 중국 공산당이 국공내전에서 승리하고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을 선포하자,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는 타이완으로 밀려났다(국부천대).3 ’중국의 상실’은 미국 조야에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으며, 아시아에서의 공산주의 확산을 막기 위한 새로운 전략 수립을 요구했다. 이에 따라 미국의 아시아 전략은 패전국 일본을 반공의 보루이자 ’가라앉지 않는 항공모함(unsinkable aircraft carrier)’으로 재건하고, 이를 중심으로 필리핀과 오키나와를 잇는 해양 방어선, 즉 도서 방위선(Island Defense Perimeter)을 구축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9
이러한 전략적 구상 속에서 한반도의 위상은 매우 불안정했다. 당시 미국 정책 결정자들 사이에서는 한반도의 전략적 가치에 대한 회의론이 팽배했다. 일례로 1949년 8월, 국무성의 위촉을 받은 중국학자 오언 래티모어는 보고서에서 “남한은 미국의 이익과 정책에 있어 자산이 아니라 부채“라고 평가하며, 미국이 한반도 문제에 너무 깊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1 1949년 6월 주한미군이 군사고문단 500여 명만 남기고 철수한 것 역시 이러한 정책 기조의 연장선상에 있었다.12
2.2 딘 애치슨의 ‘아시아의 위기’ 연설 분석
1950년 1월 12일, 딘 애치슨 국무장관은 워싱턴 내셔널 프레스 클럽에서 ’아시아의 위기(Crisis in Asia)’라는 제목의 연설을 통해 이러한 미국의 아시아 정책을 공식화했다.1 7700단어에 이르는 긴 연설의 상당 부분은 중국 문제에 할애되었으며, 애치슨 자신도 훗날 회고록에서 주된 관심사는 중국이었다고 술회했다.13 그러나 역사에 길이 남은 것은 미국의 극동 방위선을 구체적으로 언급한 대목이었다.
애치슨은 미국의 ’방위 경계선(defensive perimeter)’이 알류샨 열도에서 일본을 거쳐 류큐 열도(오키나와)로, 그리고 류큐에서 필리핀으로 이어진다고 명확히 선언했다.13 그는 특히 패망한 일본의 방위를 미국이 책임지는 것은 미국의 안보 이익에 부합한다고 강조하며, 이 방위선 내 지역에 대한 미국의 직접적인 방어 의지를 분명히 했다.9
문제는 이 방위선 밖에 위치한 지역에 대한 언급이었다. 그는 “태평양의 다른 지역들의 군사 안보에 관련되어 있는 한, 그 누구도 이 지역들을 군사적 공격으로부터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1 이어서 그는 만약 그러한 공격이 발생한다면, “초기의 의존은 공격받은 사람들 자신들의 저항에 두어야 하며, 그 다음에는 UN 헌장에 따른 문명 세계 전체의 헌신에 의존해야 한다“고 덧붙였다.1 이는 한반도와 타이완 등 방위선 밖 지역에 대한 미국의 자동적인 군사 개입은 없을 것이며, 문제 해결의 1차적 책임은 당사국에, 2차적 책임은 UN의 집단안보 체제에 있음을 시사하는 발언이었다. 이 발언은 공산 진영에게 미국의 개입 의지가 약하다는 신호로 해석될 명백한 여지를 남겼다.11
2.3 방위선 설정의 전략적 의도
애치슨 라인은 애치슨 개인의 즉흥적인 실언이 아니었다. 이는 당시 트루먼 행정부의 공식적인 아시아 정책을 반영한 것이었다. 1949년 12월 트루먼 대통령이 최종 승인한 국가안보회의(NSC) 비밀문서 ’NSC-48/2’는 이미 한국을 미국의 극동 방위선 외곽에 둔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었다.16 애치슨의 연설은 이 비밀 정책을 공개적으로 천명한 것에 불과했다.
이러한 정책 결정의 배경에는 여러 전략적 의도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첫째, ’선택과 집중’의 원칙에 따른 현실주의적 판단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급격한 군비 감축을 단행했던 미국으로서는 제한된 군사적·경제적 자원을 모든 곳에 투입할 수 없었다.11 따라서 전략적 가치가 더 높다고 판단된 일본과 필리핀 등 해양 거점 방어에 자원을 집중하고, 대륙에 위치한 한반도에 대한 직접적인 군사 개입은 피하려 했다. 이는 미국의 국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합리적 선택이었다.
둘째, 중국을 향한 복합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국공내전에서 패배한 장제스 정권에 대한 미국의 실망감과 불개입 원칙을 재확인하는 것이었고 3, 다른 한편으로는 갓 수립된 중화인민공화국을 소련으로부터 떼어내려는 ’쐐기 전략(wedge strategy)’의 일환이기도 했다.10 애치슨은 연설에서 중국의 영토 보전을 위협하는 가장 큰 세력은 “소련의 제국주의“라고 지적하며, 미국은 중국의 이념과 관계없이 관계를 맺을 의사가 있음을 시사했다.16 타이완을 방위선에서 제외한 것은 중국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유화적 제스처로 해석될 수 있다.20
결론적으로, 애치슨 라인은 ’포기’의 선언이라기보다는 ’책임의 차등화’를 공식화한 것이었다. 방위선 안의 지역은 미군이 직접 방어 책임을 지지만, 방위선 밖의 지역은 당사국의 자위 노력과 UN의 집단안보 체제를 통해 대응한다는 원칙을 천명한 것이다. 이는 미국의 모든 지역에 대한 무한 책임을 회피하고, 제한된 국력을 바탕으로 국익을 수호하려는 전략적 명료성의 표현으로 재해석될 수 있다. 6.25 전쟁 발발 직후 미국이 UN의 깃발 아래 즉각적으로 대규모 파병을 결정한 것은 21, 방위선 밖 지역을 완전히 방치하겠다는 의도가 아니었음을 방증한다. 다만 그 방식이 직접적이고 자동적인 개입이 아니었을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미묘한 전략적 뉘앙스는 전쟁을 준비하던 공산 진영에게는 ’미국의 개입은 없을 것’이라는 치명적인 오판의 근거로 작용하고 말았다.
3. 애치슨 라인과 6.25 전쟁 발발: 인과관계 논쟁의 재조명
애치슨 라인이 6.25 전쟁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는가에 대한 논쟁은 지난 70여 년간 지속되어 온 뜨거운 감자다. 이 문제는 크게 애치슨 라인이 전쟁을 유발했다는 ’전쟁 유발론’과, 전쟁의 본질적 원인은 따로 있으며 애치슨 라인은 부차적 요인에 불과하다는 ’전쟁 무관론’으로 나뉜다. 1990년대 이후 구소련 비밀문서가 공개되면서 논쟁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으며, 두 관점을 변증법적으로 통합하는 종합적인 평가가 가능해졌다.
3.1 전쟁 유발론(誘發論): 공산 진영에 보낸 ‘잘못된 신호’
전쟁 유발론은 애치슨 라인이 6.25 전쟁의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고 보는 전통적이고 통설적인 시각이다. 이 주장의 핵심은 애치슨이 한국을 미국의 극동 방위선에서 명시적으로 제외함으로써, 김일성과 스탈린에게 ’한반도를 침공해도 미국은 군사적으로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는 잘못된 신호(wrong signal)를 보냈다는 것이다.1 즉, 미국의 정책적 모호함이 공산 진영의 대남 침략 야욕을 부추기고 그들의 전략적 오판을 유도했다는 논리다.
이러한 관점은 전쟁 발발 직후부터 강력하게 제기되었다. 당시 야당이었던 미국 공화당은 애치슨의 연설을 트루먼 행정부의 외교 실패 사례로 규정하며 맹렬히 비판했다.12 대한민국 정부 역시 큰 충격에 휩싸였다. 이승만 대통령은 애치슨의 발언을 미국이 한국을 포기하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깊은 우려를 표했으며, 훗날 전쟁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애치슨 라인을 지목했다.25 당시 장면 주미대사에게 발언의 진의를 파악하라는 긴급 훈령을 내렸으나, 미국 측으로부터 명확한 답변을 듣지 못했던 사실은 당시 한국 정부가 느꼈을 불안감을 잘 보여준다.3
이 주장은 국제정치적 현실에서도 상당한 설득력을 가진다. 강대국의 안보 공약은 동맹국과 적대국 모두에게 중요한 전략적 지표로 작용한다. 미국의 방위선에서 한국이 제외되었다는 공개적인 선언은, 북한과 소련의 지도자들에게 남침 계획의 가장 큰 변수였던 ’미국의 개입 가능성’을 현저히 낮게 평가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근거로 작용했을 개연성이 충분하다.3 결국, 애치슨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그의 발언이 공산 진영에게는 ’청신호(green light)’로 해석되어 전쟁 실행의 방아쇠 역할을 했다는 것이 전쟁 유발론의 핵심 논지다.
3.2 전쟁 무관론(無關論): 김일성의 남침 의지와 스탈린의 전략적 계산
1990년대 냉전 종식 이후 구소련의 기밀 외교문서들이 대거 공개되면서, 전쟁 유발론에 대한 강력한 반론이 제기되었다. 이 문서들은 6.25 전쟁이 애치슨 라인이라는 외부 변수보다는 김일성의 끈질긴 남침 의지와 스탈린의 냉정한 전략적 계산이라는 내부적 요인에 의해 훨씬 더 직접적으로 추동되었음을 보여준다.
공개된 문서에 따르면, 김일성은 애치슨 선언이 있기 훨씬 이전인 1949년 3월 모스크바를 방문하여 스탈린에게 무력 통일을 위한 남침을 허가해달라고 요청했다.11 그러나 스탈린은 당시 남한에 미군이 주둔하고 있고, 북한 인민군이 남한군에 비해 압도적인 군사적 우위를 확보하지 못했으며, 미-소 간의 38선 분할 협정이 유효하다는 이유를 들어 김일성의 요청을 단호히 거절했다.1 이는 전쟁의 주도권과 최종 결정권이 철저히 스탈린에게 있었음을 시사한다.
스탈린이 최종적으로 남침을 승인한 것은 1950년 초였지만, 이는 애치슨 라인 단 하나의 요인 때문이 아니었다. 그의 결정에는 다음과 같은 여러 전략적 조건들의 충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첫째, 1949년 10월 중국 대륙이 완전히 공산화되면서 동아시아의 전략적 지형이 공산 진영에 유리하게 변했다. 둘째, 1949년 8월 소련이 원자폭탄 실험에 성공하면서 미국과의 군사적 균형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다. 셋째, 1949년 6월 주한미군이 철수를 완료하여 미국의 직접적인 군사 개입 가능성이 물리적으로 감소했다. 넷째, 소련의 대대적인 군사 지원을 통해 북한 인민군이 남한군을 압도할 수 있는 군사적 우위를 확보했다.28
이러한 맥락에서 박명림, 션즈화(沈志華)와 같은 저명한 한국전쟁 연구자들은 애치슨 라인이 전쟁 발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전쟁 무관론’을 지지한다.1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김일성은 애치슨 선언과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남침을 추진했으며, 스탈린의 최종 승인은 애치슨 라인보다는 동아시아의 전반적인 정세 변화와 북한의 군사적 준비 상태에 대한 평가에 기반한 것이었다. 실제로 스탈린은 남침을 승인한 이후에도 미국의 개입 가능성을 극도로 경계하여, 마오쩌둥의 지원 약속을 받아올 것을 김일성에게 전제 조건으로 내걸었다.1 이는 애치슨 라인이 스탈린의 모든 우려를 불식시킨 것이 아님을 명백히 보여준다.
3.3 종합 평가: 직접적 원인 아닌 ’촉발 요인’으로서의 가능성
전쟁 유발론과 무관론은 각기 강력한 근거를 가지고 있어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기 어렵다. 그러나 두 관점을 변증법적으로 통합하여 보다 정교한 분석을 시도할 수 있다. 즉, 애치슨 라인은 6.25 전쟁의 유일하거나 직접적인 ’원인(cause)’은 아니었을지라도, 스탈린의 복잡한 전략적 계산 과정에서 남침 결정을 최종적으로 승인하도록 만든 중요한 ‘촉발 요인(triggering factor)’ 혹은 ’환경 변수(environmental variable)’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스탈린의 의사결정 과정을 ’기회’와 ’위험’이라는 두 변수의 함수관계로 분석해 볼 수 있다. 1949년 그가 남침을 거부했을 때는 중국 공산화라는 ‘기회’ 요인에도 불구하고 ’미군 개입’이라는 ‘위험’ 변수가 너무 크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1950년 초에 이르러서는 소련의 핵 보유, 북한의 군사력 강화 등 ‘기회’ 요인이 더욱 증가한 반면, 주한미군 철수와 더불어 애치슨 라인 선언은 ‘위험’ 변수의 값을 현저히 낮추는 효과를 가져왔다. 특히 스탈린은 미국 내 첩보망을 통해 이미 NSC-48/2의 내용을 파악하고 있었으며, 애치슨의 공개적인 연설은 이 정보를 공식적으로 확인시켜 줌으로써 남침 계획의 불확실성을 크게 줄여주었다.16
따라서 애치슨 라인은 스탈린에게 새로운 남침 동기를 부여했다기보다는, 이미 존재하던 남침 계획의 실행 리스크를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낮춰주는 결정적 정보로 기능했다고 보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해석이다. 이는 전쟁의 근본적 책임이 침략을 계획하고 실행한 김일성과 이를 승인하고 지원한 스탈린에게 있음을 명확히 하면서도, 미국의 외교적 실책이 의도치 않게 전쟁 발발의 가능성을 높이는 데 기여했음을 인정하는 균형 잡힌 시각이다.11 결국 애치슨 라인은 타오를 준비가 된 장작더미에 던져진 불씨는 아니었을지라도, 바람의 방향을 바꿔 불이 더 쉽게 붙도록 만든 요인 중 하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4. ’신 애치슨 라인’의 부상: 미중 패권 경쟁과 미국의 전략적 전환
21세기 국제정치의 가장 핵심적인 특징은 미국과 중국 간의 전방위적인 패권 경쟁이다.32 이러한 거대한 지정학적 변화 속에서 ’신 애치슨 라인’이라는 개념이 부상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과거의 망령이 되살아난 것이 아니라, 변화된 시대 상황 속에서 미국의 세계 전략이 근본적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시사하는 중요한 징후다. ’신 애치슨 라인’은 ’미국 우선주의’라는 정치적 수사, ’거부 전략’이라는 군사적 독트린, 그리고 ’반도체 공급망’이라는 경제안보적 현실이 결합된 복합적인 현상이다.
4.1 ’미국 우선주의’와 동맹의 재정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등장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주도해 온 자유주의 국제질서와 동맹 체제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기조 아래, 전통적인 동맹 관계는 더 이상 상호 가치에 기반한 신성불가침의 영역이 아니라, 국익과 비용의 관점에서 재평가되어야 할 ’거래’의 대상으로 간주되기 시작했다.34 트럼프 행정부는 동맹국들에게 방위비 분담금의 대폭적인 증액을 요구하고, 주한미군 감축 가능성을 협상 카드로 활용하는 등 전례 없는 압박을 가했다.35
이러한 미국의 고립주의적, 상호주의적 접근법은 동맹국들에게 미국의 안보 공약에 대한 깊은 불확실성을 안겨주었다. 특히 한국과 같이 미국의 안보 우산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에게 이는 실존적인 위협으로 다가왔다. 미국의 방위선이 자국의 국익에 따라 언제든지 유동적으로 변경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확산되면서, 1950년의 악몽을 연상시키는 ’신 애치슨 라인’이라는 용어가 언론과 전문가들 사이에서 본격적으로 회자되기 시작했다.4 이는 트럼프 개인의 돌출 행동을 넘어, 중국의 부상이라는 구조적 압력 속에서 미국의 역할과 책임을 재조정하려는 거대한 흐름의 일부로 이해되어야 한다.
4.2 엘브리지 콜비의 ’거부 전략(Strategy of Denial)’과 동아시아 방위 구상
’신 애치슨 라인’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는 핵심 인물은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국방부 전략 및 전력 개발 담당 부차관보를 역임했으며, 차기 공화당 행정부의 유력한 국가안보보좌관 후보로 거론되는 엘브리지 콜비(Elbridge Colby)다.37 그는 저서 《거부 전략(The Strategy of Denial)》을 통해 미국의 국방 전략이 근본적으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콜비의 핵심 주장은 다음과 같다. 첫째, 미국은 더 이상 유럽과 아시아라는 2개의 전선에서 동시에 대규모 전쟁을 수행할 국력이 없다.37 둘째, 21세기 미국의 유일한 실존적 위협이자 패권 경쟁자는 중국이다.39 셋째, 따라서 미국은 다른 지역에 대한 개입을 최소화하고, 모든 군사적·전략적 자원을 중국을 억제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34
이러한 ’거부 전략’이 동아시아에 적용될 경우, 미국의 방위선은 재편될 수밖에 없다. 콜비는 중국의 해양 팽창을 저지하기 위해 타이완 방어와 제1도련선(일본-타이완-필리핀)의 유지를 미국의 최우선 과제로 설정한다.34 반면, 한반도와 같은 2차적 전선에 대해서는 동맹국이 북한 등의 지역적 위협에 대해 스스로 방어할 책임을 더 많이 져야 한다고 주장한다.41 이는 주한미군의 핵심 임무를 전통적인 대북 억제에서 대중국 견제를 위한 ‘전략적 유연성’ 자산으로 전환하고, 타이완 유사시와 같은 역내 분쟁에 재배치할 가능성을 강력히 시사한다.40 이는 결과적으로 한국을 미국의 최우선 자동 개입 방위선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나게 만드는 효과를 가지며, ’신 애치슨 라인’의 군사적 실체를 구성한다. 이러한 구상은 미국의 쇠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중요한 위협에 자원을 집중하여 패권을 유지하려는 ‘전략적 효율성’ 추구의 결과물로 해석해야 한다.
4.3 반도체 공급망과 기술 패권: 경제 안보 차원의 방위선
’신 애치슨 라인’은 단순히 군사적 경계선에 머무르지 않는다. 21세기 미중 패권 경쟁의 핵심 전장(戰場)이 군사력을 넘어 반도체, AI, 5G, 양자컴퓨팅 등 첨단 기술 분야로 이동하면서, 방위선의 개념 역시 경제 안보 차원으로 확장되고 있다.6 미국은 중국의 ’기술 굴기’를 저지하고 자국 중심의 안정적이고 회복력 있는 기술 공급망(secure and resilient supply chain)을 구축하는 것을 국가안보의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반도체 신 애치슨 라인’이라는 개념이 등장했다.6 이는 군사적 동맹을 넘어, 반도체 설계-소재·장비-제조-패키징에 이르는 가치 사슬을 공유하는 국가들 간의 기술 동맹을 의미한다. 미국은 이 과정에서 중국의 군사적 위협에 직접적으로 노출된 타이완과 한국의 지정학적 리스크를 우려하며, 공급망을 일본, 싱가포르, 혹은 자국 내로 다변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6 이는 한국이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가진 초격차 기술력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그리는 거대한 기술 패권 구상에서 소외되거나 그 역할이 축소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7 결국 한국은 군사적 방위선뿐만 아니라 경제·기술적 방위선에서도 배제될 수 있는 이중의 위기에 직면한 것이다.
Table 1. 1950년 애치슨 라인과 ‘신 애치슨 라인’ 개념 비교 분석
| 구분 (Category) | 1950년 애치슨 라인 (Acheson Line of 1950) | ‘신 애치슨 라인’ 개념 (Concept of the “New Acheson Line”) |
|---|---|---|
| 시대적 배경 | 2차 대전 종전 직후, 냉전 초기, 유럽 중심의 질서 재편 | 탈냉전 종식, 미중 신냉전 구도, 미국의 상대적 국력 조정기 |
| 주요 위협 | 소련의 군사적 팽창 (공산주의 확산) | 중국의 종합 국력 부상 (군사, 경제, 기술 패권 도전) |
| 미국의 전략 기조 | 봉쇄 정책 (Containment), 제한된 자원 하의 선택과 집중 | 거부 전략 (Strategy of Denial), 경쟁자(중국)에 대한 자원 집중 |
| 방위선 성격 | 지리적·군사적 경계선 (도서 방위선) | 지경학적·기술적 경계선 (군사 방위선 + 반도체 등 공급망) |
| 방위선 범위 (가상) | 알류샨 열도 - 일본 - 오키나와 - 필리핀 | 제1도련선(일본-타이완-필리핀) 중심 또는 제2도련선으로의 후퇴 가능성 |
| 한국/타이완 위상 | 방위선 밖의 2차적 관심 지역 (UN의 집단안보 대상) | 미국의 최우선 순위에서 밀려난 지역 (자체 방어 책임 강화 요구) |
| 주요 함의 | 공산 진영의 ‘미군 불개입’ 오판 유발 가능성 | 한미동맹의 성격 변화, 확장억제 신뢰도 약화, 경제·안보 동시 위기 |
5. 신 애치슨 라인이 한반도에 미치는 다층적 영향 분석
’신 애치슨 라인’의 등장은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및 경제 환경에 근본적인 변화를 초래하며, 이는 한국에게 전례 없는 복합적 위기를 안겨줄 수 있다. 그 영향은 단순히 군사적 위협의 증가에 그치지 않고, 한미동맹의 근간을 흔들고 경제적 생존 기반을 위협하며, 북한의 오판 가능성을 높이는 등 다층적으로 전개될 것이다. 이는 안보와 경제가 서로를 인질로 삼는 악순환 구조를 형성하여, 한국을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의 한가운데로 몰아넣을 수 있다.
5.1 안보적 함의: 한미동맹의 균열과 확장억제 신뢰도 문제
‘신 애치슨 라인’ 논의의 가장 직접적인 충격은 한미동맹의 근간을 흔든다는 점에 있다. 주한미군의 존재는 북한의 남침 시 미국의 자동 개입을 보장하는 ’인계철선(tripwire)’으로서 지난 70년간 한반도에서 전쟁을 억제하는 가장 확실한 담보였다. 그러나 주한미군 감축, 철수, 또는 역내 다른 분쟁 지역으로의 재배치 가능성이 현실화된다면, 이 인계철선 기능은 심각하게 약화될 수밖에 없다.44
이는 곧 미국의 확장억제(extended deterrence), 즉 핵우산 공약에 대한 신뢰도의 근본적인 훼손으로 이어진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 능력을 고도화하는 상황에서, 미국 본토가 위협받을 경우 과연 미국이 서울을 지키기 위해 뉴욕을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는가 하는 ’파리-워싱턴 딜레마’는 이미 한국 사회에 깊은 불신을 낳고 있다.34 다수의 여론조사에서 한국민의 과반수가 미국의 핵우산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응답한 결과는 이러한 불안감을 명확히 보여준다.46 ‘신 애치슨 라인’ 담론은 이러한 불신에 기름을 붓는 격으로, 한미동맹을 내부로부터 붕괴시킬 수 있는 잠재적 위험을 안고 있다. 동맹의 힘은 군사력의 합뿐만 아니라 상호 신뢰에서 나오는데, 그 신뢰에 균열이 생기는 것이다.
5.2 경제적 파장: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한국의 산업 리스크
과거 냉전 시대의 위협이 주로 군사적 영역에 국한되었다면, ‘신 애치슨 라인’ 시대의 위기는 경제적 생존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 미중 패권 경쟁의 격화로 인해 세계 경제는 미국 중심의 블록과 중국 중심의 블록으로 파편화되고 있으며, 그 최전선에 반도체와 같은 첨단 기술 공급망이 놓여 있다.7
’반도체 신 애치슨 라인’이 현실화될 경우, 한국 경제의 중추인 반도체 산업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미국이 지정학적 리스크를 이유로 한국을 자국 주도의 핵심 공급망에서 배제하거나 그 역할을 축소하고, 일본이나 자국 내 생산을 늘리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한다면, 한국은 최대의 기술 경쟁력을 가지고도 고립될 수 있다.6 이는 단순히 특정 산업의 위기를 넘어 한국 경제 전체의 성장 동력을 상실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더욱이, 한반도의 안보 불안정성 증가는 그 자체로 강력한 ‘코리아 디스카운트’ 요인으로 작용한다. 주한미군 철수나 한미동맹 약화와 같은 시나리오는 외국인 직접투자(FDI)의 급격한 유출과 금융 시장의 극심한 변동성을 초래할 것이다.48 이는 실물 경제에 막대한 타격을 주며, 안보 위기가 곧바로 경제 위기로 전이되는 ‘안보의 경제화’ 현상을 극명하게 보여줄 것이다. 안보가 흔들리면 경제가 무너지고, 경제가 무너지면 안보에 투자할 여력조차 사라지는 악순환에 빠질 위험이 크다.
5.3 북한의 오판 가능성과 군사적 긴장 고조
역사는 강대국의 안보 공약이 모호해질 때 지역의 불안정성이 급격히 증가한다는 교훈을 명확히 보여준다. 1950년 애치슨 라인이 스탈린과 김일성의 계산에 영향을 미쳤던 것처럼, ‘신 애치슨 라인’ 역시 북한 지도부에게 치명적인 ’전략적 오판’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50
만약 북한이 미국의 대한(對韓) 방위 의지가 약화되었다고 판단하거나, 미중 대립으로 인해 미국의 관심이 타이완 해협 등 다른 곳으로 분산되었다고 인식할 경우, 제한적인 군사 도발을 통해 현상 변경을 시도할 유혹을 느낄 수 있다. 이는 서해 북방한계선(NLL)에서의 국지적 충돌, 비무장지대(DMZ)에서의 무력시위, 혹은 그 이상의 군사적 모험주의로 나타날 수 있다. 북한의 핵무력 증강이 상당 수준에 이른 현 상황에서 이러한 오판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는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결국 ’신 애치슨 라인’은 의도치 않게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극도로 고조시키는 ’자기실현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이 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미국의 전략적 후퇴가 북한의 도발을 유발하고, 이는 다시 미국의 개입을 불러와 더 큰 확전으로 이어지는 시나리오는 1950년의 비극을 재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위험이다.25
6. 한국의 생존 전략: 전략적 선택의 기로에서
’신 애치슨 라인’이라는 거대한 지정학적 파고 앞에서 한국은 더 이상 과거의 방식에 안주할 수 없다. 미국의 방위 공약이 상수가 아닌 변수가 된 시대에, 한국의 생존과 번영은 우리 자신의 전략적 선택에 달려있다. 이는 미국에 대한 맹목적 의존이나 성급한 핵무장과 같은 극단적 선택이 아닌,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하되 우리의 ’전략적 자율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함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 자주국방 역량의 획기적 강화, 현실에 기반한 외교 노선 재정립, 그리고 국가 역량의 총결집이 요구된다.
6.1 자주국방 역량 강화와 주한미군 역할 재정립
미국의 방위 공약이 불확실해지는 상황에서 한국의 독자적인 방위 역량 강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53 이는 단순히 국방 예산을 증액하는 차원을 넘어, 국방 전략과 군사력 건설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전환해야 함을 의미한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한국형 3축 체계’, 즉 킬체인(Kill Chain),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 대량응징보복(KMPR) 능력의 조속한 완성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특히 정찰위성, 조기경보위성, 고고도 무인정찰기 등 독자적인 정보·감시·정찰(ISR) 자산을 확보하여 대북 정보 의존도를 낮추고, 비대칭 위협에 대한 독자적 억제 능력을 실질적으로 구비해야 한다.
이와 동시에, 주한미군의 역할과 위상에 대한 한미 간의 솔직하고 건설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주한미군을 단순히 북한의 남침을 막는 ’인계철선’으로만 간주하는 전통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미중 경쟁 구도 하에서 동북아의 안정을 유지하는 ’역내 안정자(regional stabilizer)’로서의 역할을 부여하고, 이에 부합하는 새로운 연합방위체제를 구상해야 한다. 이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일부 인정하되, 한반도 방위라는 핵심 임무가 훼손되지 않도록 명확한 원칙과 기준을 설정하는 고도의 외교적 협상이 요구되는 부분이다. 자주국방 역량 강화는 미국에 대한 협상력을 높여, 보다 대등하고 호혜적인 동맹 관계를 정립하는 가장 확실한 기반이 될 것이다.
6.2 독자적 핵무장론의 현실성과 국제적 파급효과
미국 확장억제에 대한 깊어지는 불신은 국내에서 독자적 핵무장 여론을 비등시키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70% 이상이 자체 핵무장 필요성에 공감하는 것으로 나타난다.46 북한이라는 핵보유국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공포의 균형’을 통해 생존을 도모하자는 주장은 감정적으로 강력한 호소력을 가진다.
그러나 독자 핵무장이라는 선택지는 우리가 감당해야 할 막대한 전략적 비용과 리스크를 동반한다. 첫째,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는 UN 안전보장이사회를 포함한 국제 사회의 강력하고 즉각적인 경제 제재를 초래할 것이다. 수출 의존도가 절대적인 한국 경제가 이러한 제재를 견뎌낼 수 있을지는 매우 회의적이다.55 둘째, 한국의 핵무장은 지난 70년간 유지되어 온 한미동맹의 파기를 의미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자국의 핵 비확산 원칙을 훼손하는 동맹국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57 셋째, 이는 일본과 타이완의 핵무장을 촉발하는 ‘핵 도미노’ 현상을 일으켜 동북아 전체를 극도의 핵 경쟁과 불안정 속으로 몰아넣을 것이다.
따라서 핵무장론은 당위론적 주장을 넘어, 그 실현 가능성과 파급효과에 대한 냉정한 비용-편익 분석에 기초해야 한다. 현재로서는 핵무장을 통해 얻는 불확실한 안보 이익보다, 그 과정에서 잃게 될 경제적 안정과 외교적 고립이라는 비용이 훨씬 더 크다고 판단된다.
6.3 가치 동맹과 국익 사이의 균형: 능동적 중추 국가 외교 모색
미중 패권 경쟁이 심화되면서 한국이 양자택일을 강요받는 상황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기는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58 이제 한국 외교는 새로운 좌표를 설정해야 한다. 그 방향은 한미동맹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가치를 공유하는 ’가치 동맹’임을 분명히 하는 ’전략적 명확성’을 견지하되, 사안별로는 국익을 최우선 기준으로 중국, 러시아 등과의 협력 공간을 유연하게 모색하는 ’전술적 유연성’을 결합하는 것이다.7
이는 미국에게는 중국 견제 구도에서 한국이 ’대체 불가능한 핵심 동맹(irreplaceable linchpin ally)’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동시에 중국에게는 한국이 미국의 정책에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적인 국익에 따라 행동하는 ’무시할 수 없는 이웃(a neighbor to be reckoned with)’이라는 점을 각인시키는 능동적 외교 전략이다.60 이를 위해서는 반도체, 배터리 등 한국이 가진 독보적인 기술 경쟁력을 외교적 지렛대로 활용하고, 호주, 인도, 유럽연합(EU) 등 유사 입장국들과의 연대를 강화하여 외교적 선택지를 다변화해야 한다. 이러한 ‘능동적 중추 국가(pivotal state)’ 외교는 한국이 미중 사이의 수동적인 객체가 아니라, 동북아 질서를 만들어가는 주체로 거듭나는 길이다.
7. 결론: 불확실성의 시대, 새로운 국가 전략을 향하여
’신 애치슨 라인’이라는 지정학적 유령의 귀환은 1950년의 역사적 실수가 21세기적 형태로 반복될 수 있다는 엄중한 경고다. 이는 더 이상 특정 행정부의 일시적인 정책 기조가 아니라, 미중 패권 경쟁이라는 구조적 변화 속에서 미국의 세계 전략이 재편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필연적인 현상으로 인식해야 한다. 따라서 미국의 방위선 재편 가능성은 이제 가상의 시나리오가 아닌, 국가 전략 수립 시 고려해야 할 핵심적인 ’상수(constant)’가 되었다.
이러한 현실은 한국에게 안보, 경제, 기술, 외교를 통합적으로 조망하는 새로운 ’국가 대전략(Grand Strategy)’의 수립이 시급함을 요구한다. 첫째, ’우리 안보는 우리 스스로 지킨다’는 대원칙 하에, 북한의 비대칭 위협을 독자적으로 억제할 수 있는 강력한 자주국방 역량을 조속히 확보해야 한다. 이는 한미동맹을 보다 건강하고 호혜적인 관계로 발전시키는 가장 확실한 기반이 될 것이다. 둘째, 안보 논리에 경제가 종속되는 것을 경계하되, 반도체 등 핵심 기술 분야에서 미국 주도의 공급망에 대체 불가능한 파트너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하여 경제적 생존과 안보적 가치를 동시에 제고해야 한다. 셋째, 한미 가치 동맹을 굳건히 유지하면서도 국익을 기준으로 다자외교의 지평을 넓혀, 외교적 고립을 피하고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신 애치슨 라인’이 드리우는 불확실성의 그림자는 한국에게 분명 심각한 위기다. 그러나 동시에 이는 한국이 지난 70년간의 수동적인 ’보호 대상’이라는 관성에서 벗어나, 동북아의 안보 지형과 경제 질서를 능동적으로 만들어가는 ’전략적 중추 국가’로 거듭날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이기도 하다. 이 역사적 전환의 시기를 성공적으로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냉철한 현실 인식에 기반한 국가적 역량의 결집과 미래를 향한 국민적 합의가 절실히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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